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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 외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대신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약속대로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으므로 저와 여러분은 구원받았고 그 예수님은 지금 이 자리에 함께 계십니다.
오늘은 스승의 주일이다. 그래서 스승에 관련된 명언을 찾아봤고 그 가운데 몇 가지를 나누며 우리가 살아서 스승에 대해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할지 생각해보자.
* "스승이 많이 가르치면 제자는 다양하고 깊은 지식을 얻지만, 스승이 지혜롭게 가르치면 제자는 인생을 통찰하는 지혜를 얻는다." - 아네톨 프랑스
** 무엇을 가르치느냐 보다 어떤 스승이 되느냐가 중요하다.( 칼 메닝거 )
*** 인간은 이런 스승을 원한다. 처음에는 판단을, 다음에는 지혜를, 미지막에는 학문을 가르치는 그런 스승을 원한다.( 임마누엘 칸트 )
모두 학교, 스승을 통해서 교육받고 성장하려 지금의 삶을 살고 있고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점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부모는 자녀들의 스승이다는 말이 있다. 과연 얼마나 잘 감당했는지 깊이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스승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버려서라도 정의와 올바름을 가르쳐야 한다. 불의와 타협하고 일그러진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러한 인생과 삶밖에 살 수 없을 것이다.
손양원목사는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에게 철저히 자신을 버려 사랑을 가르쳤다. 안재선, 아들 안경선선교사
당신에게 스승은 누구인가?? 또 누구의 스승인가?
김장수 목사는 "유사시에 무언가 설명하고 변명하려 애쓰지 말고 침묵하라"는 것을 몸소 가르치셨다.
우리는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께 무엇을 배워야할까???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 중심으로 알아보자~!
1. 사랑을 배우라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데....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편견이다.
요일4:6~10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2. 긍휼을 배우라
불쌍하고 가엾게 여겨서 도와줌, 측은심을 가져서 돕는 compassion.
약 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공격적으로 명령하고 계시는 말씀이다. 가르침도 명령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 나는 하나님께 또는 사람에게 긍휼을 기대하면서 나는 비판하고 계산적으로 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기에 우리가 은혜가운데 존재하는 것을 잘 알자.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나는 문제없고 타인만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지극히 배타적인 삶은 형식적 제사로 그칠 것이다.
3. 용서를 배우라
눅 6:37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 우리가 사랑을 교회와 예수님의 최고의 덕목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 사랑은 내 중심의 결정이지만..... 사랑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용서이다.
빛과 벨리알이 함께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십자가 피로 용서하시고 사랑해주셨다. 죄악과 사망에 자신을 던져 이루신 최고의 용서이다.
눅 17: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눅 17:4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이것은 단순한 숫자의 용서가 아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이제 우리가 예수님의 진정한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하겠다.
수많은 예수님의 가르침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았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그것들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할 것은 바로
자기부인, 자신을 버려 인류를 구원하신 그 버림을 온전히 배워야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사랑과 긍휼, 용서는 석가모니, 공자, 성인들이 모두 말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육체적, 이 땅에 살아있는동안에 인륜으로 말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하나님의 자리를 버리고 자신을 부인하고 버림받기까지 낮추신 것은....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것은 예수님만 하신 사역이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절대 종교가 아니지만..... 세상의 모든 종교카테고리 속에서 섬기는 신이 사람을 위해 희생한 것은 없다. 아프리카 토속신앙과 미신을 보더라도....
** 창조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철저히 자신을 버려 피조물의 모습 아니 피조물이 되셨고, 그 피조물의 죄악을 대신해서 자신을 버려 죽기까지 사랑한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세상 최고의 스승이신 예수님께 배워야하는 것은 바로 자기부인인 것이다.
이것을 배우고 이것을 중심으로 살지 않으면.... 아무리 예수믿는다고 수십년 교회생활을 해도 종교생활에 그칠 수 밖에 없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랑해도, 용서해도...
마 16:24(막8:34, 눅9:23)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왜 이것만 자꾸 강조하느냐??
이것이 안되면 모든 것(가르침, 교훈, 사랑....)이 종교생활, 내 만족의 생활, 내 가치챙기기 인생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종교생활하다가 버림받을 수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 우리가 닮아가야하는 것은 나를 내려 놓고 오직 내 안에 예수님만 모시고
그 분께서 진정한 나의 주인이 되셔서 나를 주장하시고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는 삶을 이루는 것~!!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냐??? 말씀이 그렇지 사람이 가능한 일이 아니잖아~!” 이렇게 말하면서 철저히 자신의 인생을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주장하고 맘대로 살아가는 삶은 예수님 없는 지극히 이기적인 피조물의 삶인 것이다.
무엇을 배워야할까?? 어떤 것을 바라보아야할까? 그림자만 밟지 않으면 존경하고 배우는 것일까?? 속은 썩어 문드러지면서???
이 말들이 이해되지 않으면 나는 잘못 믿고 잘못배웠고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
벌거벗은 모습으로 십자가 앞에 서자. 십자가로 나에게 가르치신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고 상한 심령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예배자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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